시흥시의회 여야 의원들 간의 감정이 새해들어 회복되나 싶었지만, 또다시 찬물이 끼얹져졌다.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하 예결특위 위원장) 선출 규정 때문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한달 전(지난 해 12월)에 예결특위 위원장직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다 기한을 넘겨 심의된 예산을 날려버렸다. 예산을 심의해야 하는 의원들의 본분과 역할이 일순간에 있으나마나한 무용적 존재로 전락한 것이었다. 이 일로 N의원은 “의원으로서 회의감이 든다”며 “의욕을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이 갈등이 아물기도 전에 새해를 맞이했지만, 1월 16일부터 열리게 될 제262회 임시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춘호 의원이 예결특위 위원장을 ‘의원들 간의 합의’가 아닌 ‘본회의장의 다수제로 선출한다’는 규정(시흥시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과 운영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들고 나오면서 한국당 의원들은 다시 소위 멘붕에 빠졌다.
먼저 규정에 대해 언급한 건 한국당 측이었다. 예결특위 위원장을 1년씩이든, 회기마다든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임하자는 규칙을 제안했었다. 그때 민주당은 ‘나눠먹기식’이란 표현으로 부정적이었고, 그때마다 사안 별로 협의해 나가자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민주당이 역으로 규정을 만들자며 개정안 카드를 집어 들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당의 H의원이 중심에 서 있었다.
개정안을 들고 나오게 된 배경 스토리
자초지종은 이렇다. 지난해(18년) 7월, 시흥시의회가 시작되면서 민주당과 한국당 간의 원구성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민주당은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하여 상임위 3곳을 모두 맡았다. 이때 한국당은 18년 예결특위 위원장이라도 한국당이 맡고 임기를 1년 단위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그 또한 성사되지 않아 한국당은 18년 예결특위 위원장직을 보장받지 못했다. (수정 전 표현: 8대 시흥시의회는 예결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둔 채 출발했다.) 1
H의원의 한 마디가 나비의 날갯짓이 됐다
18년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심의 때 한국당 소속 S의원이 개인적으로 예결특위 위원장직을 하고싶다고 동료 의원들에게 전했고, 당시 예결위원들 간의 합의로 한국당 소속 S의원이 예결특위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 상황을 두고 당 차원이 아니라 의원들 개인 간의 합의였다는 주장과 당 차원의 위원장직 수행이라는 의견이 양당 간에 엇갈렸다. 추경 예결위원장을 한국당이 했으니 다음 본예산은 순번 대로라면 민주당 차례였다. 이때 한국당 소속 H의원의 한 마디가 나비의 날갯짓이 되었다.
예결위원장을 선출하기 전에 임시예결위원장직은 다선의원이 맡는다. 지난 예결위원들 중 다선 의원은 한국당 소속 H의원이었다. H의원은 예결위에서 잠시 정회를 가진 후 비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3곳 모두 민주당이 가져갔으니 예결특위 하나는 한국당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이 말은 곧 민주당 입장에서는 약속을 깨는 행위로 읽혔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며, 본예산 예결위원장은 민주당이 하는 것이 맞다고 공식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이미 약속을 깼다고 여긴 민주당은 어느 조건도 수용하지 않고 파행 흐름에 올라탔다.
H의원은 “그건 개인적으로 의견을 낸 것이지 당의 입장을 전한 것이 아니다. 의사봉 내려놓고 무슨 말을 못하냐”라며 다소 어이없어 했다. 이 일로 심기가 불편해진 H의원이 한 마디를 더 얹었다.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고집하면 앞으로 예결특위는 내가 계속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를 다 가지고 있어서 견제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이런 카드라도 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말은 민주당에게 지난 회기 때 겪은 예결특위 파행을 상기시켰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당 H의원이 계속 예결위원으로 들어오게 되면 다선의원으로 임시위원장, 즉 개회를 할 수 있거나 정회를 할 수 있는 사회권을 갖기 때문에, 위원장 선출을 끝내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다선의원이 임시위원장직을 맡는다’는 조항을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상위법에 저촉돼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시 방법을 고안한 것이 예결특위 위원장을 본회의에서 다수 표결로 정하는 개정안이었다. 현재 민주당 의원이 9명, 한국당 의원은 5명으로 수적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본회의장으로 예결특위위원장 선출권을 가져오면 훨씬 유리하다는 셈이 엿보인다.
승자독식(winner-takes-all) 패자전몰(loser-loses-all)의 시흥시의회
독소조항 부메랑될 수 있어, 개정안 발의 의원 불명예도 안을 수 있다
여기서 민주당은 한 걸음 멈춰서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예결위원장 본회의 선출 개정안은 여러 비판의 과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이 조항은 지금 당장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어느 당이든 두고두고 독소조항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발의한 의원에게도 불명예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영국식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 또는 패자전몰(loser-loses-all)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독식하고 한국당은 전몰하고, 시흥시의회에 지금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시흥시의회는 다수제보다 유럽식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를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식 합의제민주주의 공식 적용하면 쉽게 답 나와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요구와 이익을 분담해서 담을 수 있도록 복수의 정당틀이 작동해야 한다. 시흥시의회 상임위 원구성 자리가 의장, 부의장, 특임위 자리를 포함해 6개 정도. 이를 현 시흥시의회 정당간 의원수 비례로 나누면 약 6.5:3.5의 비율, 원구성은 4:2로 나뉜다. 합의제로 보면 한국당이 2개의 의회운영직을 갖는다. 지금은 패자전몰, 하나도 취하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현재 시흥시의회는 민주주의 의회가 아닌 독점주의 의회이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프레임을 가진 한국당보다 민주당이 훨씬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그런 민주당이 지금 합의제 민주주의보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의회 형태에 안주하고, 오히려 승자독식 체제를 유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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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1월 17일, 시흥시의회 김창수 의원(민주당)은 해당기사에서 "예결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둔 채 출발했다"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예산특별위원회는 상임위가 아니기 때문에 미리 선정해 놓고 갈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본사는 표현이 잘못된 점을 받아들여 기사를 일부수정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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