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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시민저널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

노래 한 곡 잘못 했다가 전체 모임을 싸- 하게 만든 적이 있다. 이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금도 난감한 기억으로 살아있다. 

가수 고 이남이 씨

국회의원들과 비서들이 모인 연수 자리였는데 노래를 마치자 내가 모시던 의원도 애써 웃으려 했지만 울상이었다. 지방지 기자로 일할 때는 그 노래로 재미를 좀 보았는데 자리 성격이 다르니 반대의 효과가 난 것이다. 이남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인기를 얻었던 노래 ‘울고 싶어라’였다. 대폿집에서는 벽에 반쯤 기대어 “떠나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하고 소리 지르면 폼이 꽤 났었다. 그런데 뭔가 공동의 목표를 다지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는 얼토당토않은 가사와 곡조였다. 의미 있는 모임을 훼방 놓으려는 사람처럼 여기기도 했다. 


엊그제 치킨집의 술자리에서 어디선가 흘러나온 그 노래가 또 입장을 곤란하게 했다.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에 대한 답변을 해야 했다. 다른 자리에서는 제법 먹히는 노래였는데 자리가 다르니 반응이 달랐다. 


2년 전에 장곡동에서 마을신문을 창간했다. 정치를 하던 사람이 만들었으니 누구도 신문을 곧이곧대로 보지 않았다. 신문을 핑계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여겼다. 푸대접도 많이 받았다. 오라고 해서 간 모임에서 ‘저 사람은 누가 불렀어?’ 물으며 나를 가리키는 일도 있었다. 여전히 신문을 넣지 못하게 하는 아파트 단지도 있다. 무료로 주는 것도 싫다는 것이다. 진심이 안 통해서 억울하기도 했지만 사실 나 자신도 내 마음이 진심인지 믿지 못했다. 신문을 펴내다가 유리한 기회가 왔다 싶으면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삼십대 초반부터 놀던 물인데 그 유혹을 어찌 쉽게 이기겠는가. 그래서 신문을 3년만 내고 시흥을 떠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지난 날 동네에 끼친 민폐를 마을신문으로 상쇄하리라 생각했다. 이곳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이 이곳에서 애비에 대한 험한 소리를 듣지 않기만 해도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떠날 것이라는 말을 장곡동에서는 몇 번 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안도했다. 떠난다는 그 말에 의심과 불안을 벗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신문을 2년 냈으니 내년 7월이 떠날 날이다. 그런데 올해 마을학교를 시작하면서 장소 계약을 내가 했다. 임대기간이 2년이니 보증금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7년 3월에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장곡동에서는 ‘왜 떠나느냐’고 되묻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장곡동에서는 먹히는 노래가 정왕동에서는 먹히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다. ‘왜 가야만 하니’라고 따지며 잡는 그 날의 손길이 고마웠다. 


장곡타임즈 편집장 주영경

(이 글은 SMD 자체 모임 발행지 '위퍼 8월호'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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