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동, 과거 공단오염도시에서 벗어나나 싶더니 외국인살인사건도시로..."
사진= 김하일 씨가 8일 오전, 아내 시신 일부를 유기하러 조카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사진=경기지방경찰청>
서울에 사는 회사원 강 씨는 김하일 시화호 토막살인 사건이 터지자 시흥시 정왕동에 사는 친구 유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유 씨는 전화를 건 강 씨와는 대조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이번 사건을 대하고 있었다. 전북 익산에 사는 김 씨는 뉴스를 보자 시흥시 정왕동에 사는 딸 최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무서운 동네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문단속 철저히 하고 항상 조심해라”며 근심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최 씨 또한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시흥시 능곡동에 사는 윤 씨는 1주일에 서너 번씩 김하일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정왕동에 와서 일을 본다. 윤 씨 또한 이번 사건이 자신의 일과 업무에 긴장을 조성할 만큼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에도 시화호에서는 머리 없는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 적이 있다. 그 이전에도 2008년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 10대 여성 사체 발견, 2005년 군인 아내 살해 후 시신 유기 등 시화호 부근에서는 여러 번 사체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면역이 된 탓일까, 오히려 정왕동에 거주하거나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번 김하일 토막살인 사건에 대해 타지의 사람들보다 무게감이 덜한 경우가 많다.
한편, 정왕동에 사는 주부 박 씨(35세)는 “혹시 내 옆집에도 그런 사람이 사는 건 아닐까, 무섭다”며 김하일 토막살인 사건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도 동일한 사건을 받아들이는 감도는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정왕4동에 사는 배 씨(55세)는 인터넷에서 이번 사건 기사를 보자마자 다급히 정왕본동 주택단지에서 따로 사는 딸(24세)에게 카톡을 보냈다. 답신이 오고 나서야 안심을 하고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위험하고 두려운 사건이었지만 정작 배 씨 자신에게는 서울에 사는 강 씨와 비슷하게 거리감 있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뭘까. 시흥시 정왕동은 정왕본동과 1~4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에서 정왕본동과 1동 일부는 다른 동에 비해 주거 환경이 열악한 원룸형 주택단지가 많은 곳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고 사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거가 불안정하고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때문에 정왕본동과 1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어 있어 같은 정왕동이라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기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정왕동은 나름 주거 환경이 안정돼 있고 마을 공동체 의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정왕1~4동의 아파트 권역과 달리 상대적으로 주거가 불안정하고 개개인화 되어 있는 정왕본동 주택단지로 생활 권역이 나뉘어져 있다.
정왕1~4동에 사는 외국인은 2014년 기준으로 1천 851명이다. 반면 정왕본동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1천 432명이다. 아파트 권역에 사는 주민들은 외국인들의 주거 밀도가 높지 않아 실제로 자신의 주거 지역에서 외국인이 많다고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아파트는 주택단지처럼 보증금 없이 한두 달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외국인들은 정왕본동 외국인들보다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거구역의 이질성 때문에 정왕1~4동에 사는 주민들은 이번 김하일 사건이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났다고 보기 보다는 특수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정왕본동 주택단지의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3선을 지내고 있는 국회의원도, 3선에 성공한 시장도 정왕본동의 주거환경에 대해 임기동안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표가 되지 않는 동네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지역은 전국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곳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간혹 정왕본동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바꿔보려고 여러 실험을 시도하고 있지만, 옥상에 방을 짓고 도로에 창고를 불법으로 개축해도 규제나 행정조치로 통제가 되지 않는 지역이다 보니 어떤 마을 운동이나 환경개선의 노력을 해도 잘 먹히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마을 구성원이 워낙 파편화된 다국적 개인화 되어 있다 보니 행정관청에서도 어쩔 수 없는 지역이라고 방관하고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지난해 11월 수원 매교동에서 일어난 박춘풍 토막살인 사건 이후 경기지방경찰청은 외국인들의 법질서 경시 풍조를 바로잡아 치안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외국인 범죄 빈발지역 30곳을 특별 방범구역으로 지정했다. 그 중에 박춘풍 사건이 일어난 수원 팔달구와 이번 김하일 사건이 발생한 시흥시 정왕동은 '대표적인 외국인 범죄 빈발지역'으로 분류해 다문화 경찰센터까지 신축하기로 했던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김하일이 잔혹한 토막살인을 저질렀다. 바로 몇 달 전에도 이 지역에서 외국인 부인이 남편의 머리를 둔기로 쳐 살해한 적이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의 목소리가 더러 나오고 있지만 개발 지역이고 낙후된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관망적 시각이나 경찰 치안 부족이라는 결과적 핑계 수위만 나열될 뿐, 이 지역 특성에서 비롯되고 있는 실질적 문제점에 대해서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드물다.
지난 3월 경기도는 이 지역에 도비 4억 원을 들여 담장개선, 골목길 조명확대, CCTV설치 및 공원 조성 등을 통해 환경 개선을 하고 범죄예방을 강화하겠다는 셉티드(CEPTED) 사업을 발표했다. 실제로 셉티드 사업이 범죄예방이나 강력 사건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경찰력을 강화하고 물리적 환경 개선을 통한 방법은 집 밖에서 일어나는 범죄에만 예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력 사건에 대해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지역 구성원의 성향과 주거 환경, 지역사회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점들을 연구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물리적인 감시와 더불어 자연적 감시가 병행되어야 한다.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주변 환경을 감시할 수 있고 도덕적 정서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대부분 손을 들고 나갔다. 이 지역은 몇 개의 단체나 관련 TF팀이 단기간 내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조치는 방치에 가깝다. 주민 스스로 자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까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 지역의 주거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경찰에게만 물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시 관청과 지역을 대표해서 정치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들이 자신의 무능함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걱정스러운 건 또 다시 이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날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경계를 긋고 남의 일처럼 관망하거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제노포비아(이방인을 혐오하는 현상) 현상도 아니다. 이 지역 시민들이 김하일 사건을 자신들의 지역이 아니라 단지 특수지역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외국인 사건이라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지역 정치인들도 이번 사건을 만성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무디게 받아들이지나 않을까 하는 그들의 안일함이다. 혹시 그런 그들이 지금도 우리들의 삶의 환경을 결정짓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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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진실의 조각일 뿐이다" 작성: 김용봉, 편집:SMD 채널: 트위터, 페이스북- Rdo20 메일: srd20@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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