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머리로 판단한 결정에, 마음이 반하는 감정을 가졌을 때 쓰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이 어떤 느낌인지 공감한다.
사람들은 마음의 감정을 그냥 뇌가 이성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왜곡된 부스러기쯤으로 여긴다. 이성을 가진 뇌는 존재하지만, 감정이 담긴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뇌가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것을 먹고 싶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과연 이 욕구는 뇌가 결정한 것일까. 흔히들 말하는 ‘촉이 왔어’, ‘내 직감을 믿어’, ‘여자들의 육감’은 뇌가 판단하는 이성일까,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 있을 마음이 느끼는 감정일까.
감정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20세기 100년 동안 뇌의 감정을 담당하는 감정중추를 찾고자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애초에 뇌에 감정중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혹, 그 마음이란 것이 뇌가 아닌 우리의 장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황당한 가설이 사실일 수 있음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에메란 마이어 박사는 뇌와 장의 관계(The Mind-Gut Connection)에서 우리가 단순히 직감이라고만 생각했던 인체의 두 번째 뇌가 '장 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라며, 이 장 신경계는 우리의 판단력을 비롯해 다양한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제2의 뇌’라고 불리는 장 신경계시스템은 식도에서 항문까지 9m가량 연결되어 있으며, 5억 개에 달하는 뉴런(신경세포,Neuron)으로 이루어져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병리학 및 세포 생물학 부서의 학과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거손(Michael D. Gershon) 박사는 그의 저서 “제2의 뇌(The Second Brain)“에서 “세로토닌의 95%와 도파민의 50%는 위장 시스템에서 나온다”며, “장신경계는 ‘생각‘하지 않지만, 분명히 느낀다. 이 곳은 스트레스와 감정에 민감하고 여러 가지 신체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두뇌와 장기는 '미주신경'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스트레스와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장이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역으로 말하면, 장이 나쁘면 뇌에 기분이 안 좋게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뇌가 판단을 잘 못할 수도 있는 가설도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장은 뇌에 의해서만 활동하는 종속 기관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을 하고 신체 기능에 명령을 내리는 독립기관이다. 장은 낮에 세로토닌을 분비해 사람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밤에는 수면을 돕는 멜라토닌으로 바꾼다. 또한, 장은 몸에 흡수하지 못할 음식물은 설사를 통해 밖으로 배출하도록 한다. 이러한 기능들은 뇌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 것이다.
뇌가 없는 강장동물은 장이 뇌의 역할을 한다. 인간 이전의 모습은 지렁이나 해파리처럼 뇌가 없는 강장동물이었을 것이다. 진화론에서 최초 신경계가 탄생한 곳은 두뇌가 아니라 장이었다. 어쩌면 뇌는 장이 갖고 있던 신경계 일부를 얻어 공간을 만들고 기능을 분산했을지 모른다.
촉, 직감, 육감은 수천년 전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정보와 살아가면서 몸이 경험한 정보들의 상호작용이 아닐까. “왠지, 그 사람은 처음 봤는데 별로야”라고 느꼈다면, 어쩌면 당신의 제2의 뇌는 5억개의 뉴런을 통해 이미 그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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