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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시민저널

무서워 죽겠는데 큰소리로 대답하라니

3월 24일 12시20분, 112로 긴급히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는 정왕동0000번지인데요. 지금 웬 남자가 고성을 지르고 있어요. 출동해 주셔야겠어요.” 신고를 마치고도 계속 창문을 통해 소리 지르며 쓰러져 가는 그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옆 건물에서 2~30대로 보이는 덩치 있는 남자가 모자를 눌러 쓴 채 누워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 남자는 정면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측면 뒤로 다가갔다. 술 취한 남자가 벗어 놓은 점퍼 조끼에서 무엇인가 꺼내서는 외투 조끼는 누워있는 남자 옆에 던진다. 그렇게 누워 있는 남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TV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다시 112로 전화해 지금 상황에 대해 통화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서워서는 아니었고, 내 목소리가 혹여나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을까도 아니었다. 있는 소리로 “여보세요! 지금 웬 남자가 건물에서 나와...” 간신히 사건을 설명하는데 상대편 경찰이 소리를 크게 하라고 말한다. 이런 답답할 때가 있을까? 감기로 이틀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 큰소리로 말을 하란다. 있는 힘을 다해 경찰이 아직 오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는 사이 덩치 큰 남자는 술 취한 남자의 물건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자 앞으로 다가가 널브러져 있던 조끼위에 전화기는 툭 던지고 옆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세 번째 112에 전화를 하는 중에 2명의 경찰이 도착했다. 그때서야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경찰에게 다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신고한 사람입니다”라고 인사를 전하고는 “옆 건물 남자가 저리로 들어갔는데, 주머니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어요. 저기 저 CCTV에 다 찍혀 있어요." 지금까지 지켜본 상황을 경찰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아니 이런!! 무궁화 잎이 두 개씩이나 있는 경찰이 눈치 없는 대응을 해 나를 미치게 했다. "어디로 들어갔어요?"라며 큰소리로 묻는다. 만약 아까 그 몹쓸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나중에 내가 신고한 것을 알고 보복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이 야밤에 소리가 위로 전해지는 골목에서 말이다. 


아주 큰 소리로 질문하는 경찰에게 다가가 ‘초기대응 이런 식으로 하면 누가 신고하겠냐’고 따져 묻자 ‘오늘 신고 건이 많아 경황이 없었다.’고 둘러댔다. “카메라 확인하세요!”하고 들어오니, 물건을 훔치던 남자가 어두운 베란다에 서서 담배를 피며 밖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 출동한 경찰에게 다가가 말을 건냈다. "저기 이층에서 보고 있어요. 불은 켜지 않고 어두운 베란다 에서 지켜보고 있다고요“ 


그렇게 전하고는 집으로 들어와 처음 신고했던 112에 전화를 다시 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누가 신고하겠냐’고 하니 매우 불편한 목소리로 ‘우린 긴급 전화만 받는 곳이니 관할서로 전화‘하란다. 관할서가 몇 번인지도 안내하지 않고 통화는 끝났다. 114전화 안내에 시흥경찰서를 물으니 콜센타 안내 번호를 남겨준다. '031 310 9358' 사건이 어떻게 접수 되었는지 과정과 결과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전화를 하니 신호도 가지 않았다. 네 번을 반복하니 자동 문자가 하나 온다. 182로 넘어간다고, 182로 자동 연결 후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정작 사람이 아닌 기계음성만... 


시민은 긴급 상황에서 오직 경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느 시민이든 오늘 이런 상황을 접했다면, 다시는 신고하지도, 할 수도 없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오늘 일에 대해 ‘별일 아니네’라며 가볍게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왕본동은 솥뚜껑만 봐도 자라 등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곳이다. 지역을 지키고자 하는 신고자의 개인 신분보장과 안전에 소홀한 경찰들을 보면서 옆집 일에 무관심해져갈 수밖에 없는 이웃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다 노련하고 전문적인 경찰을 기대하며 정왕본동 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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