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시흥시는 코리아문화수도사업조직위원회로부터 '2016년 코리아문화수도사업'에 선정되었다. 이 소식은 지역언론뿐만 아니라 중앙언론에까지 크게 보도되면서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5년을 불과 2개월 남짓 남겨 놓은 이 시점에서 2016년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문화수도사업 선정의 들뜬 분위기가 식어갈 무렵. 지난 9월, 한 언론에서는 문화수도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가 실렸다. ‘코리아문화수도사업 시민 속였나’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이 기사에는 “당초 코리아문화수도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사업설명회 당시 300억 원대의 사업비를 책정하고, 시 재정사업이 아닌 공연 티켓 수익금과 정부지원, 공식 후원사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고 전했으나, 현재는 “처음 밝힌 300억 원대 사업이 100억 원대 사업으로 축소되었고, 게다가 시비 30여 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변경되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몇몇 시의원들은 갯골축제 10년치 예산을 어떤 프로그램을 할 것인지,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소위 ‘깜깜이 사업’에 동의할 수 없다며, 예산 승인을 거부했다.
9월 30일자 중부일보 기사 화면
시흥시가 코리아문화수도사업에 함께 참여했던 수원시와 제주도 사이에서 어떻게 이 사업에 선정되었는지 그 배경이나 기준에 대해서 언급한 언론은 드물다. 지난 4월 30일자 SBS CNBC에서는 선정된 이유에 대해 “시흥시는 문화수도 후보로 경합했던 수원과 제주보다 문화적 인프라는 약하지만, 지자체와 시민의 문화산업 육성 의지가 커 선정도시 결정에 바탕이 됐습니다.”라며, 결정적인 선정기준은 ‘의지’였다고 보도했다.
4.29일자 한겨레 보도 화면
지난 4월로 돌아가서 이 사업 선정 경위에 대해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처음 시흥시가 문화수도로 선정되었을 때, 각종 언론에서는 “제주도, 수원시 제치고 선정”되었다는 식으로 보도되었다. 이 사업에 함께 참여 했던 수원시와 제주도는 어떤 입장일까. 수원시와 제주도청 담당자의 말을 통해 이 사업 선정 절차의 허술한 과정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제주도청 담당자에게 '제주도는 코리아문화수도 사업의 후보도시였다. 나름 경쟁력 있는 도시였는데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주도청 담당자는 “우리 제주도는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의 후보 도시가 아니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각종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잘못된 것일까. 그의 말을 좀더 자세히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 “제주도는 단지 조직위와 협상대상까지만이었다. 조직위가 제주도에 와서 사업설명회만 했다. 수원이 먼저 했고, 다음에 제주도에 와서 사업설명회를 한 것으로 안다. 후보 도시라는 말은 코리아문화수도조직위원회가 사업설명회를 한 곳을 스스로 후보 도시로 생각한 것 같다. 나중에 시흥시에서도 사업설명회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시흥시도 후보 도시라고 했을 것이다.” 제주도는 조직위 입장에서 보면 사업설명회 대상 후보였는지 몰라도 제주도 입장에서는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의 후보가 될 의향이 없었다는 얘기다.
흔히 선정되었다는 표현은 '갑'의 성격을 띤 기구나 단체가 공개적으로 사업 공모를 하고 여러 기구나 단체가 그 사업을 하겠다고 제안서를 낸 후,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순위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제주도는 코리아문화수도사업 후보 도시라는 비유를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유는 다음 이야기에서 더 분명해진다. “제주도는 제안서도 낸 것이 없다. 자료 보내달라 해서 제주 현황 몇 개 보내주고 말았다. 그리고는 조직위에서 ‘협상 대상으로 하자’ 고 말했다.” 담당자는 제주도가 코리아문화수도사업 후보 도시가 아니라 단지 조직위에서 협상을 원하는 도시였을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조직위와는 한 번 만났다. 조직위에서 우리(제주도)에게 ‘문화수도 사업이 후원과 협찬으로 가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기업체가 많지 않아서 초기에는 협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제주도는 당분간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 입장에서 보면 조직위의 이력이라든지, 제정적인 면, 어떤 행사를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이 구체화된 게 없기 때문에 논의하는 과정에 ‘그럼 제주도는 빠지겠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얘기가 된 것이고, 조직위와 제주도의 의견이 합치된 것이다. 제주도는 코리아문화수도 후보 도시가 아니라 조직위가 협상하고자 했던 협상대상자였을 뿐이다.” 라고 전했다. 제주도청에 의하면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을 심의하기 전부터 조직위는 이미 제주도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이다.
이는 수원시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시 측은 "(조직위)에서 돈은 몇 백억씩 투자를 하겠다, 콘텐츠를 뭘 가져오겠다 라고 하는데 투자 메인 스폰서도 없고, 법인이 지난 2월에 출범해서 그동안 조직 구성하고 언론플레이는 많이 했더라. 하지만 법인의 실적이나 제정 규모도 안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사업의 구체적인 안이 없어서 저희(수원시)는 포기한 거다. 저희(수원시)와 제주도는 아마 비슷한 날짜에 이 사업에 대해 포기의사를 밝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4월 30일, 2016코리아문화수도 선포식에서 추진 경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지난 4월 조직위가 코리아문화수도사업 선정 도시를 선포하는 날, 추진경과에서 “수원시, 제주도, 시흥시 3개 도시가 제출한 도시현황 및 사업계획서 등을 받아서 심층적인 자료와 면접을 거쳐 4월 15일에 선정위원회에서 우선 협상도시를 선정하였고, 후속으로 기본협약 협의를 거쳐서 마침내 선정도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조직위와 한 번 만났고, 제안서도 낸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조직위는 심층적인 자료와 면접을 거쳐 협상도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은 현재 제시된 사업규모나 의의를 봐도 중앙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할 사업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조직위원회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구도 아니고 단순히 지도 감독하는 등록된 재단법인일 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2016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된 제주도 보도자료 화면
예상 밖인 것은 코리아문화수도사업에서 배재된 제주도가 지난 10월 1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한, 중, 일 3개국이 순차적으로 개최하는 2016년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시흥시의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은 조직위가 30억 사업 예산 보전을 요구하면서 멈춰 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예산 보존에 대한 문제는 처음부터 노출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원시 담장자는 "수원시와 협의 할 당시에도 예산 보존을 얼마나 해 줄 수 있느냐, 스폰서 모집을 해서 투자를 해 줄 수 있도록 시에서도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 저희(수원시)가 발을 뺀 거다."라며 조직위가 예산 부담을 수원시에 전가하려는 부분 때문에 사업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시흥시도 애초부터 이 조건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취재결과,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은 수원시와 제주도, 시흥시 3개 도시가 참여한 게 아니라 시흥시가 거의 단독협상 방식으로 결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제주도 공무원과 수원시 공무원들은 코리아문화수도사업을 위험한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흥시 공무원들은 현재 이 사업을 시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유치하자는 입장이다. 어느 쪽 판단이 옳은지는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수원시 공무원이 우려했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전하면서 취재글을 마감한다.
"저희 입장에서 보면 우려스러운 건 30억이 문제가 아니라 한 번 발을 들이면 끝까지 가야되는 거다. 당초 조직위에서는 재정적인 부분이나 콘텐츠를 다 가지고 온다고 한 건데, 지금 돈을 달라고 하는 건 다른 생각이 있는 거 아니냐 이거다. 다음에 30억을 쓰고 나서 모자르면 또 달라고 할 것 아니냐. 그때 가서는 발도 못 빼고 끌려갈 것이다(수원시 담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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