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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시민저널

포장마차에서 피어오르는 김들을 보며

늦은 겨울밤,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어깨를 바짝 위로 올린 채 집으로 향하는 사내가 있습니다. 양손은 앞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눈은 혹여나 언 곳이 있을까 싶어 열심히 인도만을 주시하며 걷고 있습니다.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이어폰을 습관적으로 끼고 있습니다. 


사내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고개를 듭니다. 아파트 안에 김이 모락모락 일고 있는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사내는 주머니에 있는 지폐 몇 장을 만지작거리며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포장마차 앞에 선 사내는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빼며 “아저씨, 호떡 얼마씩 해요?”라며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사내는 이미 호떡 가격을 알고 있었습니다. 호떡을 굽는 불판 앞에 가격표가 크게 쓰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앞에 서면 왠지 그렇게 말을 던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땐 그렇게 먹기 싫었는데, 요즘 이런 게 먹고 싶은 걸 보면 나이가 들은 건가봐요.”라든지, “요즘 경기 어떠세요”라면서 말이죠... 

어둠이 내린 겨울 아파트는 더 춥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간간히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들은 서늘한 겨울 아파트 단지를 데우지 못합니다. 하지만 문이나 벽하나 없이 천이나 비닐 하나로 공간을 마련한 포장마차는 겨울 공기를 먹으며 피어오르는 김을 내뿜습니다. 마치 전체 아파트 단지를 데워줄 것만 같습니다. 


사내는 거리에 포장마차 같은 것이 사라진 게 늘 아쉽습니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진 계획도시는 사람들의 정서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습니다. 밤거리를 걸어도 볼 건 인도밖에 없고, 들려오는 게 없으니 디지털 음원에 의지할 수밖에요. 


일부 도시학자들은 포장마차와 같은 거리상들로 인해 방범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둠을 밝히고 거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예방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범죄예방 효과가 이렇게 표피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가령, 세상을 살다가 지친 어느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도저히 살아 갈 수 없을 때에는 범죄를 선택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희망이 주어진 사회라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돈이 없어 먹고 살아갈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거리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리상은 불법이란 이유로,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열악한 층들의 작은 탈출구까지 봉쇄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한 곳이라도 이런 곳을 공동으로 운영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며 이웃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하는 걸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주변 상가의 상인들과 누군가의 시기로 인해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거리상들 한 번에 다 쓸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는 행정이 고작 이런 거리상 한두 곳 형성시킬 능력이 없겠습니까. 안산 어느 역에는 시에서 합법적으로 이런 포차를 역 주변에 허가해 주었더군요. 중요한 건 법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일 겁니다. 합의가 곧 법이고 그것이 행정 집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누군지 모르지만 이웃 주민 누군가가 “아저씨, 호떡 얼마씩 해요” 라는 뻔한 말머리를 던지는 그곳이 어쩌면 우리들의 고개를 들게 하고 닫아 놓은 귀를 열게 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몇 마디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채널- 메일 srd20@daum.net, 트위터, 페이스북: Rdo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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