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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시민저널

네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자판기라

어느 임산부가 스님께 물었다. 시부모께서 임신 했다고 돈을 주었는데, 그 이후로 마음에 돈 욕심이 자꾸 생겨서 태교에 좋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스님은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 백 개를 채우려 한다는 예를 들기도 하며, 그 돈을 시부모에게 돌려드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처방했다. ‘다음에 꼭 필요할 때 다시 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여도 좋다고 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라는 팟캐스트에 나온 이야기다.  



호주머니가 늘 비어있던 사람이 어느 날 돈이 생기면 ‘여기 쓸까 저기 쓸까, 이 참에 돈을 모아 볼까’ 신경 쓰느라 다른 일을 못 한다든가, 로또 당첨자의 다수가 더 불행해졌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주위의 이런 저런 모임들을 보면 “재정이 빵빵해야한다”며 회비를 적립하거나 수익사업을 벌여서 돈을 쌓는다. 그런데 돈이 쌓이면 흔히 회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부모가 떠난 후 유산이 생기면 형제들이 다투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없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돈들은 모두 ‘공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노력 없이 생긴 돈이거나 누구 개인의 돈이 아닌 공동의 돈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모임 하나를 결성하면서 돈을 쌓지 말자고 했다. 해야 할 사업이 있으면 그때마다 필요한 경비를 나누어 내기 때문에 회비도 필요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십년 가까이 늘 나오는 의견 하나가 있다. 시청에 단체 등록을 하자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면 사업을 하더라도 우리 돈 대신에 시청의 지원금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업이 큰 돈 들어갈 것도 없고 그럴 일이 생기면 그때 생각해 보자’며 시청 등록을 늘 미루었다. 그리고 등록 요건을 맞추기 위해 거짓으로 회원명부를 만들 수는 없다고 지금까지 버텼다. 


다른 단체는 시청에서 돈 받아서 일하는데 우리는 왜 우리 돈으로 해야 하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어서 얼버무리고 넘어가지만 기분은 개운하지 않다. 웃어가면서 봉사활동 잘 하다가도 누구는 이 일을 돈 받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손 털고 떠나버리는 그런 꼴 같다. 돈이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나 일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림= 동아일보 2010.6.5일자]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만 사업을 하는 모임이 별로 없었다. 특히 지원은 관청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보다 민간단체들이 관청 가까이에 붙어 있다. 


‘관변단체’라는 표현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 관의 지원을 받는 몇 단체들을 ‘관변단체’라고 불렀다. 그 표현은 부정적 의미로 쓰일 때가 많았다.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이 단체들을 정권의 파수꾼 정도로 비하했다. 그러던 것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정부에 비판적이던 단체에도 관의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정권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그 단체의 사업 내용이 공익적이면 지원한다는 ‘공평한’ 세상이 되었다. 


민간단체들은 너도나도 관청에 사업제안서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고서 십년이 훌쩍 넘었다. 대학에는 ‘프로포잘(사업제안서)’ 쓰는 법을 가르치는 과목도 있다고 한다. 관청의 지원에 힘입어서 민간단체들이 벌이는 사업이 다양해지고 규모도 커졌다. 물론 한편에서는 사업비만 들어가고 성과가 없는 일도 많다. 


이제 한국의 민간단체들은 무슨 사업을 하든지 외부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멋진 제안서를 만들어서 지원금을 받고 사업을 하다보면 의외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지원이 없으면 아예 사업을 하지 않는 현상이 생겼다. 돈을 넣어야만 사업을 내 놓는 자판기처럼 되는 것이다. 


외부의 지원이 체질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맛난 음식이 새를 영영 못 날게 하거나 사자의 야생을 빼앗아 가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민간단체들은 설립단계부터 자생력을 갖추어야 한다. 


장곡타임즈 편집장 주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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