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추위를 조금씩 이겨 나가고 있던 3월 어느 주말이었다. 동네 산책길에 몸 한쪽이 마비된 여성분을 힘겹게 부축이며 걷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3월이었지만 아직은 찬바람이 살을 베어 낼 만큼 추운 날씨라 두 노인은 두터운 겉옷을 입고 털모자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아휴~ 잘 걸으시네! 조금 있으면 뛰시겠네요.” 지나가며 인사말을 건넸다. 사실 이 말은 환자보다 보호자에게 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아픈 사람도 힘이 들겠지만 보호자는 얼마나 더 힘들겠나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뒤로도 주말이면 노인은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환자의 힘겨운 걷기를 도왔다. 나는 더 이상 겉치레 말 대신 남들보다 조금 더 긴 시선을 보내는 정도로 지나치곤 했다.
주말 산책길에 동네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봄볕 길을 걷고 계신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두 분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봄날이셨을까요? “아휴~ 잘 걸으시네! 조금 있으면 뛰시겠네요.” 지...
Posted by 김용봉 on 2015년 3월 15일 일요일
[↑ 지난 3월 16일 페이스북]
지난 주말에도 그곳에서 이 분들은 만났다. 이미 걷기를 마쳤는지 노인은 운동시설에 몸을 올리고 있었고,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 운동하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림잡아 60대 정도로 보였다.
두 걸음만 더 가면 그냥 지나쳐 갈 거리에서 나는 멈춰 서서 말을 걸었다. “오늘은 걷기 운동 다 마치셨나 봐요. 이제 좀 걸으실만 하세요?”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전한다. “아버지가 매일 이렇게 도와주셔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네? 아버지세요?” 놀라서 묻자, 마침 노인이 운동을 마치고 휠체어 앞으로 다가온다.
노인은 나이가 70대 중반이라고 했다. 딸이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구가 된 게 7~8년 전의 일이란다. 강원도에서 살던 노인은 딸의 치료를 위해 서울의 병원 이곳저곳을 돌며 2년을 지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다른 딸이 시흥시 정왕동에 집을 사 둔 게 있어 지금 이곳에 와 살게 되었다며 “지금도 강원도에 내 집이 그대로 있어요.”라고 말했다. 고향이 그리우신 모양이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딸을 매일 돌봐야 하는 노인은 매달 십여만 원으로 돌보미의 도움을 받으며 단 둘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인은 비관 대신 살만하다고 말한다. “지난달에는 10미터도 못 걸었는데요. 오늘은 40미터나 넘게 걸었어요. 오늘은 저기 끝까지 걷고 왔어요.” 노인이게는 매일 조금씩 늘어가는 딸의 걸음이 행복이었다.
앉아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따님에게 “의사들이 그러는데요. 환자 분이 걷겠다고 마음먹으면 꼭 걷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얼른 일어나셔서 아버지 따뜻한 밥 한 번 차려드리셔야지요.” 따님이 그때처럼 또 빙그레 웃는다.
지난달에는 휠체어에서 멀어지는 두 분을 뵈었다. 이번에는 휠체어와 함께 멀어지는 두 분을 뵈었다. 머지않아 휠체어가 없이 걷고 있는 두 분을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사실은 진실의 조각일 뿐이다" 작성: 김용봉, 편집:SMD 채널: 트위터, 페이스북- Rdo20 메일: srd20@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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