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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 신중함에서 분명함으로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의 논쟁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해 8월 커피포럼에서였다. 의견에 대해 감정이 부딪칠 정도로 격양된 상황에서 나는 머뭇거렸다. 머뭇거림은 '무지함'과 '신중함'이었다. ‘뭐지?, 뭘까?, 내가 뭘 잘 모르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그 생각은 잊혀졌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광복은 연합군의 선물이라는 망언은 참담합니다” 얼마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한 발언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건국절 논란에 대한 사실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19년과 1948년 건국에 대한 기사와 여러 주장(임시정부 수립 100돌, 박종인의 땅의역사 등)들을 찾아보면서 건국에 대한 내용이 정리가 되었다. 그 중 하나의 주장이 눈에 띄었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강령에서 ‘복국’과 ‘건국’을 구분했다는 것이다. 복국은 나라를 되찾는 과정으로, 무장 항쟁과 국제적 승인, 정부 기구의 국내 이전 등을 포함했다. 반면 건국은 수도를 정하고 중앙정부와 중앙의회가 정식으로 활동하면서 주권을 행사하는 단계로 규정되었다. 이 점이 1948년 건국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은 연합국의 승리와 일본의 항복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 세력은 직접적인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해방 직후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국가 수립을 시도했지만 미군정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공식적인 건국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조소앙(임시정부 외무총장_외교책임자)은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 “우리 조국은 아직 광복해야할 나라”라고 연설하며, 독립국가의 제도적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8년 제도적으로 완성되었다.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5월 31일 국회가 개원했다. 이어 7월 17일 헌법이 제정·공포되면서 국가 운영의 법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마침내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고 수도가 서울로 확정되면서 대한민국은 독립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포럼을 마치고 드는 생각은 역사를 굳이 정치적 논쟁에 끌어들여 논란을 일으킨 것, 그 논란에 국민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난 포럼에서는 무지로 신중했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서는 건국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생겼다. 

 

앞으로 명확하고 확인된 근거가 있으면 나의 사고와 입장은 유연하게 바뀔 생각이다. ‘내 생각은 온전히 내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면서 어느 입장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책임있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근거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경계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한 달에 한번, 생각지 못한 소득이 있는 커피포럼이었다. 

 

시민저널. 백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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