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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D는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방향을 선도하기 위해 교육과 비평을 주 활동으로 합니다. 시민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미디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마이크로시민저널리즘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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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새로운 구심점의 출현 가능성


19대 총선 결과 이후 SNS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두 가지 상반된 측면에서 예상할 수 있는 데, 하나는 한 때 카페나 블로그처럼, 철 지난 유행 상품 대열에 진열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과 다른 하나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사용자의 폭을 수용하며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면이다.



이미 SNS는 오래 전부터 그들만의 리그였다. 트위터의 경우, 그동안 주로 진보적 성향의 정치적 트윗들이 많았고, 그들의 의견과 다른 사람에겐 집중적으로 블럭을 하여 그의 계정을 정지시키거나 공격 멘션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자정능력이라고 여겼다.


 <글과 댓글 참조: 집단 블럭이 자정 능력인가> 이러한 행동들은 공론장의 기능으로 부적합하다는 경고가 소수의 목소리로 간간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들의 ‘으샤으샤’ 소리에 묻히기 일상이었다.


어떤 집단이든 구심점이 있기 마련이다. 각자 개개인의 대중을 SNS라는 집단으로 형성하는 데에는 유명인들의 공이 컸다. 트위터는 미국의 오바마와 한국의 김연아가 사용한다는 소식만으로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많은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사용하면서 확산되었다. 


러나 19대 총선 결과 이후 과연 이 유명인들이 지금처럼 트위터를 사용하게 될까. 가상과 현실의 격차가 드러난 지금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은 떠날 것이고, 보수 정치인들은 오던 길을 뒤돌릴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과 연계된 유명인들도 덩달아 트위터를 멀리 하게 될 수 있고 이들의 활동저하는 곧 트위터 구심점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경성화 되었던 트위터가 연성화될 수 있으며, 새로운 구심점으로 새롭게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위터의 해쉬태그의 흐름을 보면 정치적인 트윗 이외에도 비슷한 선호 경향에 따라 묶음(#날방, #유머당, #트친소, #문화 등)이 형성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연성적인 트윗과 활동은 극단화된 정치적 세력들도 자연스럽게 주제에 흡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엇갈리는(정치적인 주제) 이야기도 블럭이란 충돌 대신 유머스럽게 의견을 나누거나 충돌을 빗겨가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차단되어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편협된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각자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눔으로서 마치 수면자효과(sleeper effect)처럼 서로에게 생각의 균형을 맞추는 기능을 한다.


디지털 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냐 파편화냐는 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SNS는 앞으로 좀더 파편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확장이고 합리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SNS가 유행으로 지날 것인가, 진화할 것인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매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며, 디지털 공간안에서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작성: 2012. 4. 12                      

본 기사는 알권리 충족과 정보공유를 위해 개방된 글입니다. Copyleft@ 시흥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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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쳐블(Untouchable):1%의 우정 [영화 소개]

"미소와 음악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


영화가 끝나고 나면 두 가지 잔상이 남는다. 하나는 주인공의 정적인 미소이고 또 하나는 입가에 허밍음으로 붙어 다니는 음악이다. 시작부에 나오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셉템버(September)는 아마 감독이 작정하고 삽입한 음악, 아니면 오마쥬(hommage)일 거란 생각.

 


영화는 화려하게 관객을 압도할 만한 장면 대신 정상인과 장애인, 귀족과 빈민, 흑인과 백인의 대조적인 극과 극의 설정을 통해, 대비되는 다른 존재일수록 서로에게 더욱 더 필요한 존재일 거라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 클래식 협연대신 Earth, Wind & Fire - Boogie Wonderland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장면. (관객의 대부분은 이 부분에서 귀족 음악인 클래식 대신 서민들의 대중음악을 통해 즐거움을 얻게된다)


오케스트라 클래식 음악을 듣던 드리스(흑인배우 극중 인물)가 곡목을 TV CF나 톰과 제리 만화 영화의 삽입곡으로 제목을 맞추는 장면, 근엄하게 뮤지컬을 보아야 하는 공연장에서 웃고 떠드는 장면, 그리고 그림의 문외한인 드리스가 혼자 대충 그린 그림을 다른 귀족이 큰 금액으로 사 가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귀족들의 겉치레 삶을 비웃기도 한다.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가끔은 주인공 드리스가 누리는 귀족 삶을 관객에게 제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호화스러운 귀족의 삶을 미련 없이 떠나는 장면을 통해 귀족 삶에 대한 서민의 질투를 이겨 내게 하기도 한다. 또한 백인 여성과 흑인배우 주인공의 러브 라인은 미국 영화를 오래토록 본 관객에겐 약간의 불편함을 가져 오게 할지 모른다. 비록 추파 성격이 강한 러브라인이었지만, 일방적인  미국 영화가 만들어 낸 인종 차별의 틀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마지막에 한 여인을 등장시키면서 관객의 편견에 따라 결말을 매듭짓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자신에게 남는 잔상의 정도에 따라 여인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이 여인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작성: 12.03.24      글. 김용봉 http://twitter.com/rdo20

본 기사는 알권리 충족과 정보공유를 위해 개방된 글입니다. Copyleft@ 시흥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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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것 차에 치이면, 죽으면 그만이지


 

오후 1시경, 시흥중학교를 지날 때였다.  노인 한 분이 종이 박스를 플라스틱 대차에 한 가득 실은 채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 역주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스테인레스 안전 팬스 넘어로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밀어다 드릴게요"라고 말을 건내자 노인은 괜찮다고 손짓을 하며 힘겨운 듯 대차를 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도로로 가서 대차 손잡이를 함께 밀며 인도로 가실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인도는 울퉁 불퉁해서 힘들다고 끝내 도로로 이동하셨다. 나는 재차 위험하시다고 말씀 드리자 "괜찮아~ 차는 옆으로 갈 건데 뭘~, 그까짓 것 차에 치이면, 죽으면 그만이지 뭐~"


아무렴 세상을 많이 사셨다고 해서 인생에 미련이 없을까?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생명의 소중함은 열악한 삶일수록 그 정도도 약해지나 싶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정왕역까지 가신다고 하신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 가시던 길을 재촉하신다. 정왕역까지 가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차들과 만나게 되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위험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사실지... 할아버지 모습이 멀어지는 걸 카메라에 담으며 이분들의 삶이 우리들 관심에서도 참 많이 흔해지고 멀어지고 있구나 싶다. 


입력: 2012. 3.17                                   사진,글: 치우. http://twitter.com/rdo20

 

본 기사는 알권리 충족과 정보공유를 위해 개방된 글이므로 저작권이 없음을 알립니다. Copyleft@ 시흥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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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없는 시흥시 인터넷방송, 그 역할은 무엇인가?

산포되어있는 지역 주민의 커뮤니케이션 주도해야...

 

여러분은 인터넷이라 하면 무엇을 떠오르는가? 채팅? 이메일? 블로그? 아니면 사진? 영상? 아마도 이중의 하나는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전달, 교신, 통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제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은 인터넷에서 새로운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 의미는 바로 ‘소통’이다. 여러분은 인터넷이 곧 ‘소통’이란 말에 공감하는가?

 

인터넷방송이든 개인 블로그든 아니면 기업 홈페이지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플랫폼은 상호작용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각 지역의 자치 단체에서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방송’ 홈페이지를 구축한다. 우리 시흥시도 2008년도에 이연수 전 시장 재임당시 ‘인터넷방송’ 홈페이지가 소통의 목적으로 오픈되었다.



 

그러나 시흥시 인터넷방송이 그 ‘소통’이라는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현재 시흥시 인터넷방송은 시청 공보역할과 중복된 홍보사이트일 뿐이다. 수용자의 피드백이 전혀 없는 일방향적 사이트이다. 댓글 하나 기록하려면 로그인과 실명확인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런 단계가 관공서 해킹방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인가? 정보통신의 강국이라 불러지는 우리나라의 통신기술이 과연 그런 절차 아니면 해법이 없단 말인가? 시흥시 인터넷방송이 시민의 접근성을 간편하게 만들지 못하면 결국 시흥시 인터넷방송은 시민의 마우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얼마 전 시청 홈페이지에 시민VJ 모집공고가 발표되었다. 등록 자격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첨부였다. 로그인과 실명제가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모든 자료를 다 공개하라는 것인가? 시흥시에서 미디어를 하려면 자신의 모든 신상 공개를 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시흥시는 정부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인터넷실명제보다 더 상위적 규범을 만들어 시흥시 인터넷방송 홈페이지에 적용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과연 어떤 시민이 자신의 모든 신상을 공개하고 ‘소통’하겠다고 하겠는가?

 

디지털 기술은 멀티미디어를 구현한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큰 규모의 사이트도 텍스트부터 소리, 사진, 영상 등 모든 미디어를 표현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러나 시흥시 인터넷방송은 글과 사진배치를 위한 솔루션이 일반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보다 못하다.

 

어쩌다 올리는 시민의 콘텐츠마저 담당 공무원에 의해 검열 받아야 하는 표현의 저지선이 있다. 1996년 미국의 대법원에서 위헌판결로 휴지조각이 된 ‘통신품위법’ 이 10년이 지난 지금 시흥시에서 적용되어지고 있다. 이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인가?

 

관료주의적 행정사고로 공보역할에 그치고 있는 시흥시 인터넷방송 홈페이지. 시민들의 관심과 시선이 머무르지 않고 있는 사이, 시의 예산만 축내며 인터넷 한 공간에서 자라지도 못한 채 미아가 되어가고 있다. 인류의 4대 혁명이라 불러지고 있는 정보혁명시대에 가장 중요한 실천 과제는 상호작용을 통한 시민의 소통이다. 지역의 특성상 권역별로 구분되어있는 시흥시가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성: 09.06.05 13:58  글. 김용봉 http://twitter.com/rdo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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