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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D는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방향을 선도하기 위해 교육과 비평을 주 활동으로 합니다. 시민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미디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마이크로저널리즘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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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8 15:19 Feature Article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화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 내용을 친구들에게 전달하면 친구들은 곧잘 재미나게 들어 주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참 사춘기 때는 여학생들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면 성공률이 꽤 높았습니다. 


한 번은 군대에 있을 때 일인데요. 군부대 근처에 여성분들이 지나가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여성분이 우리 부대 옆 길가로 지나가더군요. 부대원들은 난리가 났죠. 휘파람에, 소리소리 지르고... 전 행정병인 덕분에 마침 주머니에 수첩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종이에 몇 자 적어 작은 돌에 돌돌 말아 담장 밖으로 던졌는데, 그 주에 생각지도 않았던 꽃편지가 당도하더군요. 서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제가 궁금했는지 그 여성분은 저를 보러 면회까지 왔었습니다. 그런 지난 일들 생각하면 제가 의사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글을 못 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사회 구성원으로 지내며 여러 글들을 마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을 쓴다는 것에 위축이 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렇다고 누가 저의 글을 지적하고 과하게 평한 적은 없었습니다. 괜히 혼자서 문법이 잘못된 건 아닐까, 철자가 잘못되진 않았나. 혹시 형식에 맞진 않을까 하는 등등의 조심성이 아닌 소심함이 늘 앞서 있었던 것이지요. 실상 글을 쓰다 보면 주어나 동사가 틀어지거나 어긋나는 비문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장의 오류가 글을 쓰지 말아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문장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일단 쓰자라는 마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글이나 언어가 갖추어야 할 형식보다 상대가 알아야 할 내용과 메시지가 형식에 더 우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 꼭 멋진 상자에 예쁜 포장지로 싸서 리본까지 달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그 형식이라는 게 있으면 받는 사람들은 더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빵은 배고픔을 채워 주지만 상자는 재활용 박스에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어느 날, 시간이 잠시 남길래 도서관에 들러 짧은 글 몇 줄 읽으려고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날 그 책을 빌려가서 마저 다 읽게 되었는데요. 그 책은 사무엘 프리드만이 쓴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라는 책이었습니다. 미래의 기자들에게 기자로서 세상을 읽어야 할 덕목과 시각, 또 기사를 쓸 때 필요한 요소와 자신의 경험 등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는 글에 대한 저의 소심함을 다독거려 줄 만한 예가 하나 있었는데요. 이제부터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싶은 분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을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려 볼까 합니다. 


“몰리나와 발렌틴” 


프리드만은 아르헨티나 작가인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소설을 끌어와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풀어갑니다. 소설의 배경은 독재자 페론이 집권하던 시절에 반체제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거나 사체를 일상적으로 유기하던 때입니다. 형무소에 복역 중인 재소자 두 명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한 남자는 쇼윈도 장식을 생업으로 하던 사람이었으며 입담이 좋은 몰리나입니다. 그런데 몰리나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남자는 마르크시즘을 신념으로 가진 정치범 발렌틴이었습니다. 


발렌틴은 자동차 두 곳에 파업을 사주했다는 죄목으로 붙들려 들어왔습니다. 당국은 몰리나에게 발렌틴으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어내면 관대한 처우를 해 석방을 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첩자 노릇을 요구합니다. 무료한 감방 안에서 입담이 좋은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든 스릴러물이든 아주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시도 때도 없이 해 대기 시작합니다. 둘 만의 공간인 형무소에서 정치범 발렌틴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몰리나의 요설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발렌틴이 몰리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리가 없었겠지요. 그는 늘 ‘오늘 주어진 이 순간을 위해 짜릿하게 산다는 식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항상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심한 고문을 받던 발렌틴은 결국 정보기관에게 동료들의 이름을 불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밤마다 괴로움 때문에 악몽에 시달립니다. 교도소 당국은 이제 발렌틴을 서서히 죽이기 위해 음식에 미량의 독극물을 타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는 발렌틴을 몰리나는 옆에서 치료하며 간병했습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보호해주며 알아가다가 사랑을 하게 됩니다. 첩자 노릇을 요구 받았지만 배신하지 않았던 몰리나는 어느 날 복역을 마치고 풀려나게 됩니다. 풀려난 몰리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발렌틴이 소속된 지하 조직에 접근해 도움을 주려다가 정보기관의 총에 의해 사살됩니다. 형무소에 있던 발렌틴은 이제 거의 죽을 지경으로 고문을 당합니다. 그런데요. 발렌틴이 이 고통스러운 고문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건 혁명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바로 몰리나가 생전에 들려주었던 시시껄렁한 영화이야기들을 떠 올리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프리드만은 소설 속의 주인공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입담이 좋았던 동성애자 몰리나는 쾌락, 즐거움과 현실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았고, 정치 수용범 발렌틴은 목표와 이상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글쓰기의 상호보완적인 요소로 대입합니다. 프리드만은 정치범 발렌틴을 이상주의, 즉 ‘가치 있는 이야기’로 설명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몰리나를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가는’ 기법으로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발렌틴은 이슈나 현안 등 아젠다라면, 몰리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프리드만은 “몰리나가 없는 발렌틴은 지루한 도그마(dogma, 독단)의 세계”라고 표현하고, “발렌틴이 없는 몰리나는 단순한 킬링타임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기자의 영역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소설 속의 발렌틴은 취재 영역이고 몰리나는 기사쓰기를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는 사회 개혁과 이상주의를 실현해야 할 임무가 부여돼 있는데 그게 발렌틴의 요소이며, 한 편으로는 기자가 갖추어야 할 예술가의 임무를 몰리나의 요소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 가지 관점으로 서술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여러분들께 저의 생각을 직접 전하고 있는 단계이고요. 두 번째는 프리드만의 시각을 제가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프리드만이 제게 이야기한 것을 제가 듣고 다시 여러분들께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들도 이 세 가지 관점을 구분해서 판단을 해 보셔야 하는데요. 우선, 제가 앞서 설명한 의사 전달력에 대한 판단입니다. 첫째, 소설 속 형무소 이야기 상황이 그려지셨나요? 둘째, 소설의 이야기를 기사 쓰기로 대입하는 프리드만의 설명이 이해가셨나요? 이 두 가지가 다 이해가 되셨다면, 지금 제가 하고 싶었던, 혹은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은 여러분들에게 잘 전달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글에는 발렌틴이 존재한다는 것이겠지요. 이 글을 읽으시면서 지루하지 않게 편히 읽혔다면 또한 몰리나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특별히 글의 형식이나 문법, 글의 장치 또는 구조를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전하기 위해 말을 시작하고 맺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 글을 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분이 계신다면, 전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글. 김용봉 SNS@Rdo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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